볼펜에 스포츠카를 담아라 | |
[매거진 esc] 3년 개발 끝에 새로운 볼펜 ‘FX ZETA’ 내놓는 모나미 디자인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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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 검지, 중지 세 손가락만 있으면 볼은 굴러간다. 굴러가는 볼의 궤적을 따라가는 잉크의 흔적이 글씨다. 손가락으로 두드리면 글씨를 쓸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어도, 세 손가락 끝을 모으고 손목을 움직여 만들어내는 글씨의 힘은 여전하다. 글씨를 쓸 수 있도록 인간이 만들어낸 필기도구 중에 가장 편리한 도구는 볼펜이다. 잉크에 따로 찍을 필요도 없고 계속 깎아낼 필요도 없다.
‘볼펜’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그려지는 하나의 형태가 있다. 육각형으로 만들어진 흰색 플라스틱 막대기 양쪽에 같은 색깔의 촉 덮개와 노크가 있는 모나미 153 볼펜이다. 1963년 5월1일 시장에 나와 지금도 사용되는 모나미 153 볼펜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잡아보게 되는, 또 누구나 살면서 153 볼펜에 얽힌 이야깃거리 한두가지쯤 갖게 되는 볼펜의 원형이나 다름없다. 디자인에서는 한국적 ‘슈퍼 노멀’ 디자인의 대표적인 제품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최소한의 디자인만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둬냈다.
10명으로 이뤄진 모나미 디자인팀은 크게 제품 디자인 담당과 시각 디자인 담당으로 나누어진다. 제품 디자이너들은 모나미가 출시하는 문구류 제품의 디자인을 그려내고, 시각 디자이너들은 그 제품에 덧입혀지거나 그 제품 주변의 모든 시각적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서로 다른 분야의 디자이너들이 머리를 맞대 하나의 제품을 완성해나간다. 에프엑스 제타뿐 아니라 모나미의 수많은 사무용품을 만드는 데 제품 디자이너인 류재준 과장과 시각 디자이너인 이덕영 대리의 손발이 맞는 건 그래서 중요하다.
“동시에 2~3개의 제품 디자인을 진행하기도 해요. 그렇다고 다 실제 제품으로 만들어지는 건 아니에요. 소비자 조사를 통해 좋은 반응을 얻은 제품이 출시되죠. 특히 모나미의 경우 누구나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범용 제품이 될 수 있는지가 중요해요. 디자인 문구와는 다르게 기술적인 부분도 중요하죠. 그래도 최근 경향을 보면 확실히 디자인 면에서는 사람들의 눈높이가 많이 높아진 걸 알 수 있어요. 최대한 세련된 제품을 디자인하려고 노력하죠.”
올해로 창립 50돌을 맞은 모나미한테는, 또 모나미 문구류의 중추 구실을 하는 디자인팀에는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153 볼펜 이후 그만한 히트작을 내놓는 것, 또 하나는 밀려드는 외국 제품 사이에서 모나미만의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것, 두 가지다. 이 숙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면서 내놓은 제품이 에프엑스 제타다.
이 제품의 시작은 잉크였다. 기술로 승부하겠다는 결심을 한 모나미는 3년 전 새로운 잉크인 ‘에프5’(F5) 개발에 성공했다. 특수 유성잉크인 에프5는 기존의 잉크보다 부드럽고 선명하면서 날렵하고 속도감이 있다. 중성펜에 비해 잉크 찌꺼기도 현저히 줄어들었고, 0.7 제품 디자이너들이 주목한 또 한가지는 손에 쥐고 쓸 때의 밀착감이다. 속도감이 있는 잉크이기 때문에 손에 잘 쥐어지지 않으면 잉크 속도를 손이 따라가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에프엑스 제타는 볼펜 아래쪽은 둥글게, 엄지와 검지 사이에 걸쳐지는 볼펜 중간부터 위쪽은 부드러운 사각형으로 제작돼 손 안쪽에서 헛돌지 않도록 했다. 류 과장은 “펜은 손의 일부이자 연장이기 때문에 그만큼 자기 손처럼 편하게 사용하는 게 중요하다”며 “에프엑스 제타의 디자인 작업에서 누가 사용해도 편리한 보편적 디자인의 가치인 ‘유니버설 디자인’ 측면도 신경을 썼다”고 설명했다. 점차 형태를 갖춰가기 시작한 볼펜은 여러 차례의 소비자 설문조사와 반응 등을 통한 수정을 거치며 지금의 디자인으로 완성됐다.
디자인팀 시각 디자이너들은 볼펜의 이미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로고 제작부터 스티커, 인쇄물 등 에프엑스 제타의 시각적인 이미지를 맡았다. 에프엑스 제타의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나가면서 동시에 모나미라는 거대한 브랜드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계속해나갔다고 한다.
“문구류 디자인은 크게 두 개의 서로 다른 시장이 주도해요. 하나는 다양한 색상과 깔끔한 디자인, 작은 기능의 극대화 등이 특징인 일본 시장이고, 다른 하나는 단순한 디자인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가며 정밀성을 높여가는 독일 시장이죠. 일본과 독일 시장의 브랜드와 제품이 국내 시장에도 많이 들어오면서 모나미만의 브랜드 정체성을 갖는 게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지고 있어요. 그래서 저희는 지금까지 제품 각각의 개성을 살린 이미지를 만드는 데에서 회사 전반의 브랜드 정체성을 만드는, 사람 냄새 나는 브랜드 정체성을 이미지화하는 데 골몰하고 있죠.”
이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만들어낸 에프엑스 제타는 이제 곧 시장에 풀린다. 출시 전 소비자 조사에서 반응이 어땠냐고 물으니 “좋다와 별로다, 반반이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에프엑스 제타가 ‘오래된 친구’인 153 볼펜만큼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인터뷰를 진행하는 한 시간여 동안 써본 결과, ‘꽤 괜찮은 친구’라는 데 한 표 던지겠다.
글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사진 제공 모나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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