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호 사진전
김윤호 작가가 오는 10월 14일부터 11월 14일까지 '원앤제이 갤러리(대표 박원재/www.oneandj.com)’에서 개인적 '사진전(SAJINJEON)'을 개최한다. 작가는 금번 전시를 통해 한국 사진계에서 주로 촬영 전시되는 소재나 장소, 기법 등을 관찰하고 그 만의 예리한 풍자 감각과 비평적인 시선으로 새롭게 담아낸 작품을 선보인다.
□ '사진전'을 통해 김윤호 작가는 대나무, 소나무, 돌, 풀 등 국내 사진 작품의 익숙한 풍경 소재와 그 속에 강박적으로 드러나는 오리엔탈리즘 등 국내 사진의 공통적 패턴에 대해 그 만의 창의력과 과학적 호기심을 결합시켜 다각도에서 재조명했다. 금번 전시 작품에 등장하는 촬영용 조명은 사진을 찍는 장소성과 사진의 대상이 되는 피사체를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김윤호 작가의 이전 작품에서 보여졌던 지루한 풍경의 미인대회나 포스트 카드, 관광버스 등 사회 현상에서 패턴을 찾아내는 작가의 예리한 시선이 사진을 찍는 행위 그 자체로써 표현되고 있다.
□ 2010년 3월, 세계 3대 메이저 쇼인 '아모리 쇼'에서 국내 유일하게 열었던 '솔로 쇼(Solo show)'에서 솔드 아웃(Sold out)되며 세계적으로 주목을 끌었던 '김윤호 작가'는 사진을 통해 사회, 문화적 현상과 습관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해왔다. 작가는 스스로의 작품 세계를 위해 매일 매일의 사회적 습관을 관찰하는 데에 관심을 두며, 사회적 행동 체계와 계층 간의 특징적 패턴에 그 자신을 개입시켜 작품에 반영한다
김윤호작가는 1971년 경남 함양 출생, 중앙대학교 사진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영국 Goldsmiths College에서 Associate Research Studentship in Fine Art 과정을 수료했다. 2002년 다음 작가상을 수상했으며 2006년 중앙미술대전 우수상을 수상했다. 2003년 인사아트센터, 2004년 연구고안 수유+너머, 2007년 독일 베를린의 쿤스틀러하우스 베타니엔, 아르코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2009년 미국의 휴스턴, 산타바바라뮤지엄에서 그룹전을 가졌으며 2008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절은 모색, 원앤제이갤러리에서 흔적, 아르코미술관에서 이미지연대기, 아트선재에서 Correspondence등 국내외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에 대해 묻고 답하다
● 김윤호는 도시 근교, 국도 주변, 이름도 민망한 각 지자체의 축제 현장, 관광 엽서에 등장하는 명승지를 돌아다닌다. 그리고 그곳에서 보이는 것 이면의 체계를 추적한다. 이때 그는 대상에 '동화'되기 보다는 언제든 그곳을 떠날 수 있을 정도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이러한 거리는 작가가 작품 내부의 개별적 요소 하나하나에 집중하기보다는 그들의 상호 융합하고, 충돌하는 전체적 구조를 조망하게 한다. 그렇다고 일정한 거리에서 조망하며 포착한 모든 요소를 프레임에 담아내지 않는다. 그는 마치 연극 무대처럼 최소한의 요소로 최대한의 상징을 끌어낸다. 그러기에 그의 사진에는 부가적인 요소는 모두 삭제되고, 군더더기 하나 없는 완벽한 상징체계가 구현된다. 여기서 한걸음 나아가 생각해보면, 연극 무대의 모든 사물은 그 자체의 의미 이상을 가진다. 즉, 사물이 선험적으로 가진 의미 이상의 사물로 읽어야 한다. 그러기에 연극 무대 같은 김윤호의 작업은 단순한 풍경이 아닌 풍경 안에 재현된 다층적 이데올로기의 메타포이다
환상에 갇힌 현실을 유랑하다
● 오늘도 많은 이들이 세상 곳곳에 숨어있는 '명장면'을 찾아 출사를 떠난다. 그 결과는 어떨까? 일단 그들이 바쁘게 기록한 세상은 그들의 노력과는 반대로 다양하지 못하다. 끊임없이 발걸음을 옮기지만, 결국 그들은 비슷한 공간에서, 비슷한 풍경과 비슷한 사물에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마치 '사진'은 이래야 한다는 강박이 그들에게 내재된 듯하다. 그리고 이러한 '사진'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반복된다. 반복되는 모든 것에는 그 반복을 가능케 하는 숨은 힘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사진'의 강박을 작동시키는 힘의 정체가 무엇인가이다. 김윤호는 이를 찾기 위해 이러한 '사진'이 생산되는 전 과정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추적한다. 김윤호의 이번 작품은 디지털의 발달로 대중과 가장 가까운 창작 매체가 된 '사진'의 의미를 되묻는다. 많은 사람들에 의해, 그리고 그 어느 매체보다 빠르게 사진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지만, 최종 결과물은 천편일률적으로 동일하다. 이들의 사진의 의하면 사진에는 돌, 꽃, 소나무, 대나무, 풀, 일몰 등이 특정한 기법을 통해 재현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누구나 손쉽게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듯 한 사진 창작 과정이 오히려 정형화된 사진을 양산하며 사진의 역할을 축소한다.
● 김윤호는 이들의 창작 과정을 그대로 답습한다. 그들이 자주 찾는 출사지를 찾아가고, 그들이 자주 담아내는 소재를 찍는다. 외형상 이 작품들은 인터넷에 최고의 '사진'이라는 명목 하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사진과 유사하다. 총 천연색의 극적인 하늘, 무엇인가 심오한 뜻을 내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물들, 소나무의 유연한 굴곡 등이 김윤호의 사진에도 고스란히 놓인다. 반복되는 출사지의 사진에는 '사진'은 있지만, 오히려 작가는 익명화된다. 즉, 예술의 자율성이 구현된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어떤 강력한 힘에 의해 자율성은 삭제된다.
● 김윤호의 사진 역시 그들의 사진과 전혀 구별이 되지 않는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이러한 유사성은 우리가 환호하고 열광했던 이미지가 실상은 누구나 구현할 수 있는 어쩌면 무가치한 이미지였음에 대한 고백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고백에서 김윤호의 이번 작업은 멈추는 것인가? 때로는 전면에 때로는 풍경의 숭고함에 묻혀버리지만, 그곳에는 언제나 조명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사진'이 다루는 주요 요소들을 다시 비춘다. 이질적으로 놓여 강력하게 비추고 있음에도 사진의 정형성에 의해 이 조명이 전면에 있건, 후면에 있건 그리 부각되지 않는다. 분명히 프레임에 안착한 낯선 도상이 낯설지 않게 보이는 것은 그 주변의 정형화가 큰 힘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을 새롭게 보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틀, 즉 '사진'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그 틀에서 조금도 벗어나 바라보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봐야 하는 것은 친숙한 풍경에 놓인 조명을 인식하고 그것이 비추고 있는 그 사물들, 공간들이다. 왜 그들은 조명을 받고 있는지, 조명을 받고 있지만, 왜 그것을 인식하지 못했는지를 되물어야 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사진'이란 무엇인지 묻고 답하는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 김윤호는 지금도 어딘가를 서성인다. 그의 발걸음은 그 공간과 마주하는 대화이다. 그 대화는 때로는 그토록 소망했던, 동경했던 것과의 대화이다. 그럼에도 그의 대화는 동경을 배반한다. 환상에서 현실로 넘어오는 이 지독한 순간을 김윤호는 유랑한다. 현실의 악몽이 계속되는 한 그의 유랑도 계속 될 것이다. ■ 이대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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