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모나미 : 153을 문학에 담다
- 내 사랑 모나미 -
내가 널 사랑하는 이유는
너의 검은 피를 빌어
나는 비록 어쭙잖은 생각이라도 태어나게 하기 때문이리라.
너는 이런 나를 위해
죽을 똥을 싸가며
나에게 헌신을 다했다.
내가 처음 너를 만났을 때와
강산이 수차례 변한 지금까지도
너의 외양과 내양은 항시 같은 모습이었으니
내 어찌 너를 아니 사랑할 수 있겠는가
고맙게도 너는
흰 치마에 검은 저고리를 받쳐 입은 어머니처럼 인자했다.
귀가 간지러우면 기꺼이 귓밥도 파주고
여드름이 탱글탱글 익어갈 때면
얼굴 한번 찡그림 없이 피고름까지 받아주었었다.
이렇듯
너는
가려운 날엔 긁어주고
속이 답답할 땐 글자로 마음을 토해내게 하니
너만큼 나의 사정을 잘 아는 이도 없었다.
생각의 진척이 없어
너를 입에 물어도 보고
손가락 사이에 끼고 돌려도 보고
그러면 너의 육각 틀 안에서 걸리는 것이
세상으로 통하는 돌파구가 되곤 했었다.
네 안의 적당한 장력은
단조롭기 짝이없는 삶에
톡톡 튀는 활력을 불어넣기도 했고
탄력없는 일상에서 나를 깨우기도 했고
그런 너에 길들여진 나는
긴장했을 때나
졸리울 때나
막막한 시간 앞에 허우적 댈 때나
수시로 너를 통해 마음을 가다듬었었다.
세상에서
나의 생각을 유일하게 끄집어낼 수 있는 이
나의 생각을 유일하게 정리해 줄 수 있는 이
나의 생각에 유일하게 길을 열어 주는 이
내 너를 아니 사랑할 수 있겠느냐
세상에 네가 없었다면
나의 생각은 그저 한낱 공허한 망상으로 그쳤을 터
세상에 네가 없었다면
나는 말 못하는 벙어리, 눈 먼 장님
너의 생명은 나에게 녹아들어
나의 생각에 피를 채우고
단어 하나 하나 혈서를 쓰듯
난
너를 빌어
세상도 담아보았었고, 우주도 담아보았었다.
죽음도 경험해보았으며, 탄생도 경험했었다.
그대
나의 모나미여
난 그댈 통해
환희를 경험했습니다.
황홀함을 경험했습니다.
그대는
애인이자
친구이자
스승이자
반려자였습니다.
당신만큼 진실한 이가 없었기에
당신이 세상을 떠난 오늘
난 더 이상 생각을 담을 수 없는
바보가 되어버렸습니다.
당신이 힘들어했을 때
생각을 멈추어야 했습니다.
정말 내 잘못이 큽니다.
내 욕심이 당신을 죽음으로 몰아갔습니다.
아직 마치지 못한 생각은
이제 미완으로 남겨질 것입니다.
당신 없는 나의 생각은
계절 없는 일 년과 다름없습니다.
당신 없는 나의 생각은
비와 바람이 없는 세상이나 진배없습니다.
오늘 난
당신의 몸에 꼭 맞는 관을 하나 짤까 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늘 자리했던 책상 위에 고이 놓아둘까 합니다.
사랑하는 이여!
당신의 검은 피로 나는 행복을 꿈꾸었고
사랑하는 이여!
당신의 검은 피가 그런 날 참 무던히도 행복하게 했습니다.
부디
저세상에 가서
그대도 내가 그리웁거든
그대에게 가는 길이라도 열어주시구려.
나의 사랑 모나미여!
- 목관절 탈골로 인해 사망한 나의 친구 모나미를 추모하며 -
서해 안양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