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 풍경소리]디지털세상서 모나미볼펜 아날로그의 향수
- 작년 말 필자는 사주학 관련 책자 및 개운법과 관련하여 사주 속으로와 행운을 부르는 특급 비결책 2권을 출간한 바 있다. 모처럼 시내 대형 서점에 나가보았다. 평일 오전 중임에도 방학 중이라 그런지 자못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는 서점을 보니 아무리 인터넷 시대라 해도 오프라인 매장의 매력은 따로 있구나 싶었다. 본인의 책자가 진열되어 있는 모습을 보니 새삼 부끄러움과 함께 더욱 커지는 사명감을 느끼게 된다.
말이 서점이지 없는 것이 없다. 온갖 종류의 책은 서점이니 당연하고 예쁜 그릇, 천연 비누와 화장품, 문방구 용품에 음악과 패스트푸드점까지 온 종일을 있어도 심심치 않겠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스스럼없이 소통되는 문화 공간이다. 가지가지 예쁜 노트에 다양한 디자인의 문방 용품이 얼마나 많은지 둘러만 보아도 꿈 많던 학창 시절이 되살아나는 듯해 필자의 책은 잊고 팬시점을 둘러보느라 잠시나마 행복한 여유를 즐기던 중에 형형색색의 예쁜 필기구에 시선이 갔다.
그저 보기만 해도 아무 글이나 그림이나 쓰고 싶어졌고 그리고 싶어졌다. 그 와중에 필자의 시선이 닿은 곳이 있었다. 바로 모나미 볼펜이었다. 다양한 색감과 디자인을 자랑하는 그 많고 많은 필기구 중에 단촐한 검정과 파랑, 빨간색으로만 서 있는 모나미 볼펜을 보니 갑자기 디지털 세계 속에서 아날로그로 회귀한듯한 느낌과 함께 향수가 피어올랐다. 총천연색 영화를 보다 갑자기 흑백의 스틸컷을 보는 느낌이랄까.
필자는 한 때 미술학도였던지라 특히 색감이 가지는 매력에 대해 본능적인 끌림을 느끼곤 한다. 필자의 청소년기 때만 해도 지금과 같은 다양한 색감의 풍요로움은 흔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 당시 그림을 전공하는 학생들이나 화가들은 일제 물감이나 크레파스를 선호하곤 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필자는 학교수업을 할 때만큼은 모나미 볼펜을 사용했었는데 이상하게도 모나미 볼펜의 투박한 검정색이 공부할 때의 잡념을 멀리해주는 것만 같았다. 일종의 자기 암시라고나 할까. 모나미 볼펜과 친구처럼 동고동락하던 추억도 떠오른다. 작아져서 더 이상 손에 쥐어지지 않는 몽당 연필을 모나미 볼펜의 하얀 몸통에 끼어 쓰던 일,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볼펜 돌리기를 하던 일,
여타 필기구 속에 그 때 그 모습으로 단촐하게 서 있다. 세상이 아무리 급박하게 변해가도 그저 그 자리에 자기 모습을 지키며 서 있는 묵묵한 진실함처럼 말이다. 상담을 하는 지금도 필자의 필기구 통에는 모나미 볼펜이 주요 필기구 임에도 갑자기 진한 향수가 밀려오며 말 그대로 모나미 볼펜이야말로 우리나라의 근대화와 애환을 함께 한 국민 볼펜이다.
상업적 이유에서라도 하루가 다르게 디자인이며 기능을 고치고 바꾸기 좋아하는 요즘 세상에 참으로 보기 드물게 고집스런 물건이다. 사람도 이렇듯 오랜 세월을 두고 중심을 지키며 자기의 본분과 쓰임에 충실하다면 이것이 바로 도를 이루는 길일 것이다. 불가에서는 모든 유정(有情)은 물론 무정(無情)까지도 불성이 있다고 보며 서로 인드라망처럼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너와 내가 남이 아니고 유정과 무정이 별개가 아닌 세계.
한 우물을 판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은 시대에 모나미 볼펜이 보여준 고집에 애정이 간다. 모나미 볼펜의 이 고집스런 행보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어려웠던 시절을 함께 겪어온 지조 높은 옛 친구 같은 모습의 모나미 볼펜이 계속 우리의 곁을 지켜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오랜만에 참 행복했다.
김상회 역학연구원장
www.saju4000.com 02)533-8877
- 기사입력 2010.01.20 (수) 21:41, 최종수정 2010.01.2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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